
한민일보 서울포커스 김은금 기자 | 고양특례시는 덕양구 원흥동 소재‘심봉원 묘 및 신도비(沈逢源 墓 및 神道碑)’를 고양시 향토유산으로 새롭게 지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조선전기 유학자이자 청송심씨의 고양시 입향조로 널리 알려진 효창(曉窓) 심봉원은 사헌부 장령, 사간원 교리, 홍문관 직제학 등 언론기관의 중요 직책을 두루 역임하고 호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다가 노환으로 1574년 별세해 지금의 덕양구 원흥동 묘역에 정경부인 경주김씨와 나란히 묻혔다.
심봉원 묘역은 당시의 묘제 양식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고, 신도비·상석·향로석·망주석과 좌우 문석인 등 각종 석물이 당시의 모습대로 잘 남아있어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의 묘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부친 심순문(沈順門)과 백형 심연원(沈連源), 중형 심달원(沈達源)의 묘소는 모두 김포에 있으나, 심봉원은 고양시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까지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덕양구 원흥동에 있는 청송심씨 효창공종회 문중 묘역에는 심봉원의 묘 뿐 아니라 영의정을 지낸 심희수(沈喜壽), 고양군수를 지낸 심창(沈昶) 등의 묘가 후손들에 의해 잘 관리되어 유지되고 있다.
심봉원 신도비는 1616년 세워질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전액(篆額)은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 쓰고, 비문 내용은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이 지었으며, 당시 조선을 대표한 서예가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이 글씨를 썼기에, 당시의 서예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수(머리돌) 및 비신(몸돌)은 한 개의 백색대리암으로 되어 있으며, 쌍용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이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학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고양시 향토유산위원들은“심봉원 묘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후손들에 의해 꾸준히 관리되어 당시의 묘제양식이 온전히 남아있으며, 신도비의 섬세한 표현은 예술적으로도 뛰어나 역사‧학술‧예술적 가치를 모두 충족했기에 향토유산으로 지정했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