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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상국립대학교 이석광 명예교수, 《잉글리시 스터디스》에 논문 발표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 《천사들의 시간》로 본 ‘도덕의 회복 가능성’

 

한민일보 서울포커스 박근원 기자 |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의 작품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가치의 회복 가능성을 탐구한 연구가 발표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상국립대학교 영어영문학부 이석광 명예교수가 1919년에 개간된 예술 및 인문학 인용색인(A&HCI) 영문학 연구지 《잉글리시 스터디스(English Studies)》에 머독의 소설 《천사들의 시간(The Time of the Angels)》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천사의 시간: 아이리스 머독 작품에 나타난 플라톤적 요소―‘무모한 선’과 ‘무조건적 사랑’(The Time of the Angels: Platonic Elements in Iris Murdoch – Good for Nothing and Love for Nothing)’으로, 이석광 명예교수는 머독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어떻게 현대적 윤리를 구축했는지 분석했다.

머독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념이 약화된 ‘신학 이후의 시대’에도 플라톤적인 ‘선(Good)’의 개념은 여전히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다고 주장한 머독의 철학을 이석광 교수 자신이 만든 조어 ‘무조건적인 사랑(Love For Nothing)’이라는 틀을 가지고 소설을 분석했다.

하지만 머독이 말하는 이 ‘선’은 신처럼 직접적으로 계시되거나 형상화될 수 없는 추상적인 이상이다. 이를 전제로 이석광 명예교수는 논문에서 머독의 소설 《천사들의 시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 소설은 신의 죽음을 선포한 허무주의적인 사제 카렐(Carel)과 도덕의 본질을 고민하는 그의 형제 마커스(Marcus)를 중심으로, 고립된 사제관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파괴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소설 속 배경인 짙은 안개는 전통적 가치가 사라진 현대인의 영적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Love for Nothing’이 선을 움직이게 한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사랑’이 선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점이다. 머독에게 선은 그 자체로 고립된 이상에 머물기 쉽지만, 타인에 대한 사심 없는 ‘사랑’과 ‘주목(Attention)’이 더해질 때 비로소 윤리적 실천으로 변모한다. 특히 이석광 교수가 들추어낸 Love for nothing은 어떤 보상이나 목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도덕적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Fat relentless ego)을 잠재우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주목’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 소설은 철학적 실험실이자 거울

흔히 머독은 자신의 철학과 소설을 엄격히 구분하려 했고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끊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석광 명예교수는 머독의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적 이념들이 실제 삶의 무질서와 충돌하는 ‘현상학적 실험실’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소설 속 인물인 마커스는 도덕에 관한 책을 쓰며 머독의 철학적 사유를 대변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환상에 빠져 고통받는다. 그는 결국 이론이 아닌 Love for Nothing이야말로 실제적인 인간의 활동임을 깨달으며, 보답 없는 사랑만이 허무주의의 늪에서 자신과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 지향점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석광 명예교수는 논문 결말에서 머독의 말을 인용하며, 선(善)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의 과정이자 ‘도덕적 순례’임을 강조했다.

이석광 명예교수의 이번 논문은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아이리스 머독이 추구한 ‘현실주의적 도덕’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