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일보 서울포커스 국용호 기자 | 서울역사박물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우리들의 광복절’ 등 2건의 전시를 비롯해 교육, 공연 등 다양한 기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8월 5일부터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두 건의 특별전이 동시 개막되며, 딜쿠샤와 경교장 분관에서도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가 진행된다.
첫 번째 전시인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은 기획전시 A실에서 8월 31일까지 개최된다. 안동의 명문가 석주 이상룡(李相龍) 일가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고택 임청각 복원 개장(’25.8.15.)을 시민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두 번째 전시인 ‘우리들의 광복절’은 기획전시 B실에서 11월 9일까지 개최된다. 광복 이후 서울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광복절 경축식’과 문학·음악·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광복절이 기억되고 재현된 과정을 재조명한다.
두 전시는 광복 이전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광복 이후 개최된 ‘광복절 경축식’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광복절을 기억하는 방식과 시대정신을 엿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광복 80주년 기념 서울·안동 교류 특별전으로 마련되는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전시는 안동 명문가 출신으로 사회 계몽운동과 만주 무장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이상룡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과 독립투쟁의 역사를 조명한다.
전시는 이상룡 선생의 일생에 걸친 독립운동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의병운동에 진력하다가 혁신유림革新儒林으로서 활동하던 초기부터, 54세의 나이에 만주로 건너가서 경학사, 서로군정서 등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며 활동하던 중년시기,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말년 시기까지와 일가 가족들의 독립운동, 그리고 『석주유고石洲遺稿』 내용을 주제로 한 서예작품 전시 등으로 구성됐다.
이상룡(1858-1932) 선생은 고성이씨 법흥종중의 안동 임청각臨淸閣 출신으로, 을미사변 당시 항일을 위한 의병활동에 참여했다가 실패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근대사상을 수용한 혁신유림革新儒林이 되어 근대적 정치조직이라 할 수 있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결성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당하자, 선생은 54세가 되던 1911년 문중의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을 비롯한 일가 50여 가구와 함께 만주로 망명하는 결단을 내린다.
만주에 도착해서 뜻을 같이하는 애국 지사들과 함께 무장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여 사장으로 취임했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개교했다. 1912년에는 경학사를 계승한 부민단을 만들었고, 부족한 독립자금의 충당을 위해 1913년에는 종택인 임청각臨淸閣을 매도하려고 했다. 나아가 부민단을 중심으로 남만주 13개 단체를 통합한 한족회를 발족하여 안정적 독립자금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에는 한인 지도자들과 함께 남만주 독립운동의 총본영인 군정부를 조직하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개편했다. 교육기관인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의 후신)를 통해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여 북로군정서 등에 지원하여 봉오동ㆍ청산리 전투의 승리에 기여했다. 1925년 9월에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국무령國務領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이상룡 선생의 열렬한 애국심은 함께 망명했던 아들 이준형李濬衡, 손자 이병화李炳華를 비롯한 일가 친척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모두 11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되기도 했다.
이상룡의 문집인 『석주유고』에 수록된 시문 중 간도 망명생활의 소회와 함께 독립에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시문과 취지서 등 50여 편을 고성이씨 법흥종중의 일가 후손인 원로 서예가 유천攸川 이동익李東益의 필치로 쓴 서예작품으로 전시했다. 목숨을 건 간도 망명생활 속에 읊은 시에는 굽히지 않는 독립의 의지가 담겨 있고, 100여 년전 국민주권의 공화정을 꿈꿨던 이상룡의 정치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대한협회안동지회와 경학사의 설립 취지서는 그의 애국정신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지향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들의 광복절’ 전시는 1부 ‘광복절의 기록’, 2부 ‘광복절의 기억’, 3부 ‘광복절의 추억’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는 광복 시민들이 기억하는 광복절의 의미와 시대정신의 변화상을 조명하기 위해 광복절 경축식과 부대행사에 주목했다. 더불어 광복절과 관련 있는 문학,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 콘텐츠도 함께 전시하여, 광복절을 통해 시대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도록 기획했다.
1부 ‘광복절의 기록’에서는 광복 이후 80년 동안 서울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광복절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다. 광복절 경축식 자료를 활용하여 광복절이 국경일로 지정되고 시민 축제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국가의례로서의 광복절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했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부 ‘광복절의 기억’에서는 문학,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광복절이 단순한 국가 기념일을 넘어 시민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문화로 재현되어 왔는지를 조명한다. 해방 직후의 감격을 담은 문학과 음악에서부터 통일을 염원한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광복절 관련 대중문화의 흐름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그리고 3부 추억(Recollections)에서는 박물관이 진행한 시민 기증 캠페인과 연계해, 개인의 삶 속에서 되살아난 광복절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직접 수집한 광복절 관련 기념품부터 소중히 간직해 온 태극기까지, 시민 개개인의 추억이 담긴 물품과 사연을 함께 전시하여, 광복절이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됐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광복 80주년을 더욱 풍성하게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교직에 있었던 기증자가 1945년 6월 3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하루하루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장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 일기장은 해방 전에는 일본어로, 해방 소식을 접한 뒤에는 한글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해방 직전 소련군의 진격 소식, 일본의 패망, 해방 직후의 감격이 고스란히 담긴 이 일기는, 한 개인이 겪은 해방의 순간을 가장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전해준다.
전시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여름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전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빙고 게임으로 알아보는 우리들의 광복절’ 등이 있으며, 초등학교 3~6학년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9월 6일과 20일 오전·오후 각 2회 운영된다. 참가 신청은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또는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광복의 의미를 음악으로 되새기는 재능나눔 콘서트도 준비됐다.
8월 16일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서 ‘되찾은 땅, 되찾은 노래’를 주제로 한 음악회가 열린다. 황순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해설과 송은주 음악감독의 총괄 아래 진행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분관 딜쿠샤와 경교장에서도 광복절 기념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딜쿠샤에서는 작은전시 《독립, 일상에서 지킨 염원》을 통해 일제강점기 외국인 기자 앨버트 W. 테일러와 김주사의 삶을 소개한다.
태극기를 숨기고 3·1운동 소식을 해외로 알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주사의 후손인 민정기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본 전시는 2026년 6월 28일까지 운영한다.
경교장에서는 《광복, 끝과 시작의 문턱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임시정부가 서울 경교장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며, 해방 직후 정치적 환국 과정과 의미를 되새긴다. 본 전시는 2026년 4월 5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전시와 연계하여 두 분관을 함께 둘러보며 완성하는 어린이 활동지가 8월 중 마련될 예정이며, 가족 단위 관람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되새기고, 광복의 의미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모두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월요일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