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일보 서울포커스 임경복 기자 | 제주특별자치도가 건축물을 에너지 소비 주체에서 생산․저장․거래 주체로 전환하는 녹색건축 확산에 본격 나선다.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을 계기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건축 분야 에너지 전환 전략을 구체화하려는 것이다.
제주도는 9일 제주문학관에서 녹색건축의 확산 전략과 지방정부의 정책 역할을 논의하는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한 녹색건축 확산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제주도가 지난해 ‘2035 탄소중립 제주’ 비전을 선포하고 올해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되면서 건축 분야의 에너지 전환 전력을 본격화하는 출발점이 됐다.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비롯해 건축사, 연구기관, 건설 유관기관 관계자, 전문가 등 150여 명이 참석해 녹색건축 정책 방향과 실행 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세미나에서는 건축 분야의 에너지 효율 향상과 지속가능성 강화 방안에 관한 전문가 발표와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추소연 RE도시건축사사무소 소장은 국가가 2050년까지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88.1%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신규 건축물의 제로에너지화(ZEB)와 기존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추 소장은 지방정부 대부분이 중앙정부 예산 사업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전체 건축물의 95%를 차지하는 민간 건축물에 대한 감축 수단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초기 투자 부담, 기술 수용성 부족, 정책 연계 미흡 등도 주요 장애 요인으로 꼽았다.
추 소장은 “지방정부가 공공건축물부터 제로에너지 건축을 선도적으로 적용해 실증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주도에 대해서는 관광도시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며, 세 가지 제주 특화 방안을 제시했다. 화석연료 보일러 금지를 포함한 ‘제주형 녹색건축물 모델’ 구체화, 관광 숙박시설의 온실가스 배출 관리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연계 라벨링 도입, 원도심 노후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그린리모델링 특화 도시재생 사업 추진 등이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제주가 직면한 건물 부문 에너지 문제를 수치로 제시했다. 제주도 온실가스 배출량 중 건물 부문이 53%이고, 건물 에너지 사용량은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8.9% 증가해 전국 평균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제주의 에너지 인프라 특성이 녹색건축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는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도시가스 보급률이 19.8%로 최하위이고 개별 기름보일러 사용 가구 비중이 36%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만큼, 히트펌프 같은 재생에너지 기반 난방 시스템으로 전환할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배 부소장은 “유럽연합은 2040년까지 냉난방에서 화석연료를 완전히 퇴출하는 것을 목표로 히트펌프 전환을 확대하고 있다”며 “제주도도 신축 건물이나 택지 개발 시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금지하고 난방의 전기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후 주택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제주 주택의 47.4%가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며, 특히 단독주택의 노후화 비중이 높다. 배 부소장은 노후 단독주택의 히트펌프 도입과 리모델링을 병행하고,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공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부소장은 녹색건축 확산을 위한 금융지원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민간 건물의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에 따른 건축비 증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녹색건축기금을 마련하고,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에너지 요금 절감액으로 공사비를 상환하는 요금연동형 금융지원(OBF)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녹색건축 관련 정보와 제도, 금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통합 서비스 지원 조직인 ‘원스톱숍(One Stop Shop)’ 구축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녹색건축 확대를 지역의 복지 확대, 일자리 확대와 연계해 통합적인 기후경제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패널토론에서는 오영훈 지사가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녹색건축 확산의 장애 요인, 지방정부의 정책 방향,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 분산에너지 특구가 건축 분야에 가져올 변화 등이 다뤄졌다.
오영훈 지사는 “녹색건축은 초기 부담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큰 분야”라며 “공공이 먼저 실증 모델을 구축해 민간 확산을 이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재생에너지 기반을 활용해 건축물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며 거래하는 주체로 전환될 수 있다”며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이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이번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분산에너지 특구 정책과 연계한 녹색건축 확산 전략을 구체화하고, 건축물 에너지 기준 강화, 녹색건축 인증 활성화, 민간 참여 확대 등 후속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