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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신년메시지- 본지 송원기 회장
한민일보/서울포커스 송원기 회장

2020년 독자제위께 보내는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신년인사를 드립니다.

일간 한민일보와 월간 서울포커스 애독자 여러분께 이 지면을 통하여 인사드립니다.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우리들의 삶과 인생의 끝자락에 남길 흔적은 무엇일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이전에 앞선 현인들이 말한 서사들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시의 한 구절)
박인환 (시인)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조병화 (시인)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중광스님 ......."에이 괜히 왔다 간다"
천상병 (시인)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이순신장군 ....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 (必死卽生)
사도세자 ......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단 말인가?" (아버지 영조의 심경을 그대로 피력한 비문이지 싶다.)
처칠 ........"나는 창조주께 돌아갈 준비가 됐다.
창조주께서 날 만나는 고역을 치를 준비가 됐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미국의 시인)...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테레사 수녀님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와 같다"
버나드쇼(영국의 극작가)..."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르키메데스 ......."내 묘비는 원기둥에 구가 내접한 모양으로 세워달라"
노스트라다무스(예언가)..."후세 사람들이여, 나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
모리아 센얀 (일본선승)...."내가 죽으면 술통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도 몰라"
헤밍웨이 ......"일어나지 못 해서 미안하네"

이 내용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인사들의 말입니다. 
이 말들이 저에게 주는 감동적인 것이 있어 존경하는 애독자 여러분들게 그대로 옮겨 보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은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인지에 대해 심상해보는 순간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다가는 그 흔적. 어쩌면 망자가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가 바로 죽음 전에 말한 하나의 유언으로 압축될 것입니다.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유언.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백 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입니다.”
내가 살아 죽어 간후, 이 세상에 나의 흔적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지금에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큰 업적 남기지 않더라도 평범하게 사는 인생은 성공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피해주지 않고 사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살아서 아첨받다 죽어서 비난받고 묘비가 깨지는 인생은 비극입니다.
죽어서도 좋은 사람, 아까운 사람으로 존경받는 인 생은 위대하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인생은 무엇이며 나의 삶의 흔적은 어떻게 기록될까?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꾸려가는 일은 하나의 방법만 있는게 아닙니다.
삶에는 모범답안이 없습니다.  누가 어떤 삶을 모범답안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오직 유일한 길이라고 명명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현재를 절망하는 이유는 대개 모범답안이 있다는 획일적인 사고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다수가 걷고 있는 대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이들의 삶은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답에서 벗어났다 말할 수 있을까요?

주류가 만들어낸 문명이란 수많은 오류로 생명파괴에 익숙한 반 생태적 삶을 강제하고 있다.  문명은 편리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렸다고 자찬해 왔습니다. 
그런 문명의 혜택 덕분에 사람의 생명은 연장되고, 생활은 더 나아지고, 삶은 행복해졌다고 자위합니다.
그러나 깊이 파헤쳐 들어가보면,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더 좋은 물건을 소비하고자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고,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대량소비하면서 환경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더 맛있고 많은 음식에 대한 탐욕 때문에 비만해지고, 건강을 해쳤습니다. 
가공식품의 천국인 현대문명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수년간 유통시키기 위해, 식품을 거의 방부제와 첨가물 덩어리로 무장시키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자동차는 사람들의 폐를 오염시키고, 소음공해와 사고율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진보된 문명이 결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할 것입니. 
경쟁은 현대 사회의 본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즘엔 초등학교부터 시험점수로 학생들을 줄세우는데 앞장서고, 그에 반대하는 소신있는 교사는 파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일도 다반사입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이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생각없고, 철학없는 공산품인냥 대량 생산해 내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학교는 결국 좋은 사람이 아닌, 경쟁력 있는 인간 양성에 교육의 목표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현대 문명은 이 체제가 좋다고 선전하고, 주체적인 인간들을 기계처럼 교육시킨다. 넓게 이 문명은 개인을 집단무의식속에 감금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양심있는 사람들을 오래 속일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문명이란 창살없는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기에 이른 것입니다.

" 우리가 애써온 삶은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다. 검소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립하는 그 삶은 우리 이마에 땀을 흘려 생계를 꾸리고, 고용주나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타자로부터 공급받을 수밖에 없으며 또 타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다움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은 다시 타자의 타자성을 견디는 타자에 대한 신뢰성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사랑에 의해 산다. 사람다운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향후 삶의 행보가 이 말에 근거하여 역사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향후의 우리들의 삶이 휘양찬란한 것은 아니다 하더라도, 보통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애독자 여러분 ! 2020년 새해를 맞이 하면서  언제가 우리들의 목적이 성취하게 되면 ‘노력한 삶의 마지막 성취’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한 해를 보내는 분기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월 1일                         
한민일보/서울포커스 회장 송원기

편집부  hanmin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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